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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솔직히 당신 열정엔 관심없어요] 피자집에선 피자만 주문하십쇼

by 거꾸로 아빠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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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과격하게 표현된 책 제목에 이끌려 서평단 신청을 하였고,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었고, 책이 왔고, 책을 읽었다.

 

기자 출신의 저자가 쓴 글이라 문체가 늘 보던 책이랑은 조금 달랐다. 작가의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문장이랄까? 오랜 기자생활로 감정을 배제한 육하원칙이 잘 짜인 사실에 기반한 글만을 강요받았던 것에 대한 약간의 반항이 섞인 느낌이다.

 

보통 리더십에 관한 책이란게 읽다 보면 다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다. 특히나 해외에서 번역되어 온 유명한 책들은 읽어 내려가는 것이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선 끝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현실에서 심심찮게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내내 큰 어려움 없이 완독하고 말았다. 소위 꼰대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필히 읽어야 할 책이고 이제 막 꼰대의 길을 시작하려고 하는 젊은 리더들에게는 따끔한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그런 책이다. 읽어보시라.

 

 

솔직히_당신_열정엔_관심없어요_책
솔직히 당신 열정엔 관심없어요

 

리더십, 이제는 '외교'입니다

“전쟁은 생명이 없는 집단에 대한 생명이 있는 힘의 작용이 아니며, 완전한 무저항은 결코 전쟁일 수 없으므로 항상 생명이 있는 두 힘의 상호 충돌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저서 《전쟁론》을 통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이 인간과 맞서는 것은 무생물을 다루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니, 의지를 관철하는 과정에 있어 상대의 반응이나 항거를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죠.

조직을 통솔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와 팔로워의 뜻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윗선의 명령에 팔로워가 항상 이의 없이 복종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상호 간의 견해나 지향이 엇갈리며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이 훨씬 흔하죠.

물론 기업문화 전반에 수직적인 색채가 짙었던 데다 지휘 관행마저 대체로 위압적이던 옛 시절에야, 설령 부하직원을 독립적 의지가 결여된 무생물 수준으로 취급하더라도 상하 간의 알력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는 드물었죠.

하지만 수평적 조직문화가 확산하는 데다 소통과 공감이 중시되는 요즘 추세에선 과거의 통치술을 그대로 적용했다간 의지와 의지가 상호 충돌하는 ‘전쟁'까지도 발발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랫것들의 반항쯤은 직위와 짬에 기대 제압하거나 설복시킬 자신이 있으니 상명하복을 고수할 것이라 선언하는 분도 없진 않은데요. 예전과는 달리 이직이나 퇴사가 굉장히 활성화된 현시대에선, 거느린 직원을 그저 잡은 고기라 여기고 무작정 압박하기도 도통 쉽지 않습니다. 

논리나 명분이 부재한 우격다짐으로 부하직원을 찍어 누르려 들면 조직문화나 근무 여건이 훨씬 우수하고 합리적인 곳을 찾아 떠날 뿐, 어지간해선 굳이 참고 견디는 이가 드물 것입니다. 대안이 될 만한 선택지쯤은 이젠 얼마든 있으니까요.

이젠 팔로워들은 윗선에서 내리꽂는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묵묵히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응하는 보상과 대우 없이는 희생과 헌신을 거부할 것입니다. 수뇌부의 무능과 독선, 아집에 휘말려 침몰하는 조직에 명운을 걸고 머무를 이유도 없습니다. 

천하의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알더라도 어리석은 군주를 충심으로 보필했던 제갈무후 같은 신하도, 섬길 나라가 사라진 이후로도 망국의 유신을 자처해 절의를 꺾지 않은 문천상 같은 충신도 웬만한 기업에선 감히 기대할 바가 아닙니다. 혈연으로도 숙명으로도 얽힌 바 없는 구성원 앞에서 리더랍시고 의리나 충성을 역설하는 것은 천박한 농담에 그칠 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리더십 발휘나 조직 관리 전략은 보다 '외교술'에 가까워져야 합니다. 식민지를 다루는 본국의 태도를 취해서는 필경 곤란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업무 지시도 의견 수렴도 타협과 의논을 전제로 한 교섭이어야 합니다. 오로지 힘의 격차가 맞대결에서의 우월을 결정한다 자신해,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물론 전 세계의 협격까지 세심히 헤아리지 않았던 러시아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언행 모두가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듯 감정에 휘둘리는 바 없는 명경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토록 지고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은 고생과 감내한 굴욕이 얼마인데 이제 와 몸을 사리며 부하직원 눈치를 살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간혹 나오곤 합니다. 어림짐작으로 하는 말도 아니고, 필자가 실제로 면전에서 들은 바 있는 불평인데요.

많이들 하시는 말씀 있지 않습니까. 회사는 자아실현하러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하로 팔로워를 배치하는 의도 중, 지난 세월 그대들이 경험한 설움을 이들을 통해 해소하라는 것은 역대로 존재했던 바가 없습니다. 조직이 바라는 것은 그저 그들을 잘 통솔하며 역량을 최대로 끌어내 기대하는 바 이상의 성과를 내라는 것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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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집에선 피자만 주문하십쇼

지극히 사사로운 견해입니다만, 저는 예술가를 두고 '기존의 스타일을 답보할 뿐 실험정신이 없다'며 비판하는 평론에 공감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커리어 내내 오리지널 작품 한둘을 거의 그대로 베끼거나 짜깁기하는 지경이 아닌 이상, 예술가 본인이 가장 자신 있거나 개성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축으로 삼으며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은 그렇게까지 흠 잡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팬은 다름 아닌 그 예술가만의 장점이나 특질에 열광하는 것이며, 도리어 장차 나올 작품들조차도 배리에이션이 어떻건 그만의 고유한 특성만큼은 진하게 묻어 나와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달리 비유하자면, 마르게리타 피자를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을 놓고, 음식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들은 연일 시카고 딥 디시가 부재한 아쉬움', '그는 콤비네이션을 두려워하는가' 등을 운운하는 글을 뿌리는 셈입니다. 정작 단골들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가게의 마르게리타 피자만을 높이 평가하며 또 사랑할 뿐인데 말이죠.

 

솔직히 당신 열정에 감동했어요

 


'오서오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 줄 알지만 지붕은 못 넘고, 나무를 올라도 타 넘지는 못하며, 수영은 해도 골짜기는 못 건너고, 굴을 파지만 제 몸은 못 감추며, 달릴 줄 알아도 사람을 앞지를 수는 없는 날다람쥐의 특성을 가리킵니다. 

날다람쥐가 그 재주는 무려 다섯에 이르더라도 막상 특출난 기술엔 다다른 바가 없듯,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는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죠.

리더들도 욕심이 과해선 안 됩니다. 휘하에 둔 이가 이미 잘하는, 최소한 탈은 없이 수행하는 업무 이외에도 뭔가를 더 의욕적으로 배우며 '답보'를 깨고 '발전'해나가길 바라는 분이 꽤 많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가 손에 익은 분야 바깥에서도 역량을 무난히 발휘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괜한 김치찌개에 신경을 쏟느라 마르게리타 피자 퀄리티까지 놓친 주방장처럼, 오히려 본업에나 지장이 가지 않으면 차라리 다행이죠.

물론 세상엔 두 가지 이상의 분야를 능숙히 섭렵하고 시너지를 발휘해 성과를 내는 우수한 인물도 분명 존재는 하지만요.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런 인걸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을 복 받은 리더가 몇이나 되려나 싶긴 합니다. 

태반은 그 능력이 사뭇 다른 업무를 통섭하는 차원까진 도달하진 못할 테고, 그런 이들에게 가왓일을 무리해 가르친들, 날갯짓도 하고 땅을 파헤칠 줄도 알고 나무도 이따금 타지만 모두가 따지고 보면 미숙한 경지에 그친 누고 재에 불과한 인재를 양산할 뿐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가장 잘하는 분야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도 합당한 전략입니다.

피자집엔 피자만 주문해주시길 바랍니다. 내보기에 잘해낼 것 같다며 솔직히는 본인도 잘 모를 미답의 길을 병행하길 함부로 강권하진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은 생을 책임져주거나 손해를 보는 만큼 배상을 해줄 준비가 없다면, 품은 재능이 분명치 않은 자에게 도전과 실험을 감히 권하지 말아 주십시오. 본인의 아쉬움이나 어림짐작에 기대 부하직원들의 커리어를 꼬아버릴 권리는 그 어느 리더에게도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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