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등장으로 화폐라는 의미와 인식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팬데믹으로 인해 화폐를 너무 무자비하게 찍어내는 바람에 암호화폐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인식되어 달러 수요를 일부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시장에 풀었던 달러를 올해 초부터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거둬들이기 시작함에 따라 모든 자산시장의 거품이 일시에 빠지기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여간 돈이든 물건이든 줬다 빼앗는 게 제일 기분 나쁘다...
최근 2~3년간 달러를 이렇게 무식하게 풀었다가 무식하게 수거해가는 상황도 역사적으로 거의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암호화폐의 급부상으로 대 혼돈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원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으로 내 자산을 어디에 저장해두어야 할지 자산시장의 눈치게임에 일반 개인들은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화폐의 추락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포브스는 오늘날의 화폐적 인플레이션의 해결책으로 금 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암호화폐는 적어도 '현재는' 좋은 화폐가 아니라고 한다. 화폐 가치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화폐의 기원부터 최근의 암호화폐의 출연까지 화폐의 역사적 흐름을 알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읽어보시라.
돈이 가치를 잃을 때
통화가 가치를 잃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경제에서 화폐가 감당하는 역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화폐에 대한 정의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화폐가 '교환 매체'라거나 '계산 단위', 혹은 '가치의 저장소'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들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에서는 가치의 척도라는 돈의 주요한 기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화폐는 시계나 자, 저울과 같은 측정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화폐는 시간이나 공간,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헌법 입안자들은 헌법을 제정할 당시 돈의 개념을 잘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도량형의 기준을 정하는 헌법 조항에서 화폐를 주조하고 화폐의 가치를 정하는 연방의회의 권한을 규정했다.
암호화폐는 어떨까?
여기서 궁금증이 생길 만하다. 화폐가 안정된 가치를 가져야 하는 측정 도구라면,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는 어떨까? 우리가 내놓는 답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치가 안정적으로 측정된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암호화폐 대부분이 적어도 '현재는' 좋은 화폐가 아니다.
암호화폐는 정부가 발행하는 명목 화폐의 대체물로 개발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격변기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단 하루 만에 그 가치가 반 토막이 난 전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달러나 유로가 그처럼 하락했다면, 사람들은 두 통화가 붕괴되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한편, 디지털 화폐를 도입했다고 광고하는 기업들도 있다. 그러면 일상에서 디지털 통화로 식료품비를 결제하거나 집세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는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페이팔 같은 플랫폼에서는 판매자의 암호화폐를 즉각 달러로 전환할 수 있다. 오래전 자국 화폐를 달러로 대체했던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했다. 비트코인이 일상적인 결제에 사용되는 과정을 금융 인프라가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아직 두고 볼 일이다.
암호화폐는 현재 실제 통화라기보다 결제 시스템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stable coin'으로 알려진 새로운 유형의 암호화폐가 부상하면 상황이 곧바로 바뀔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나 금, 원자재 같은 특정한 자산에 고정되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 Tether는 시장 가치로 따지면 규모가 가장 큰 암호화폐 중 하나다.
그래도 지금 외환 트레이더들은 테더를 이용해,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변동성이 심한 비트코인을 사들인다. 일부 논란이 일고 있지만 테더는 실제 화폐의 기능을 실현할 만한 소수의 디지털 화폐에 속한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가치 측정의 도구가 아니다.
이 모든 사실이왜중요할까? 통화가 '안정된 화폐'로 널리 사용되려면 신뢰받는 가치 측정도구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능이 충족되지 않으면 더는 신뢰받을 수 없다. 그리고 화폐가 신뢰를 잃으면 결국 가치를 상실한다. 곧이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화폐적 인플레이션, 화폐의 폭락
1년 전 100달러였던 운동화의 가격이 갑자기 150달러가 되었고, 평균 100달러 남짓이었던 일주일 식비가 이제 200달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면 궁금해진다.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팬데믹 때문일까? 식료품 가격은 고삐 풀린 듯 치솟고 있는데,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모든 것이 오르기 시작했다. 2000년 60만 달러에 매입할 수 있었던 주택을 예시로 들어보자.
당시에는 집을 보수할 필요가 없어 한 푼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수리가 필요하다. 그때만 해도 인근에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너도나도 집을 팔려고 내놓는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조금 더 지난 2021년, 60만 달러였던 집은 93만 달러에 가까운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이때 우리는 집을 판매하고 얻을 이익을 생각하며 흥분한다. 그러다 이내 2021년의 93만 달러로는 기존의 집과 비슷한 수준 집을 매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집을 매입하기 위해 돈을 더 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눈높이를 낮춰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인플레이션이다. 이제 인플레이션을 좀 더 명확히 정의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돈이 가치를 잃을 때 발생하는 가격의 왜곡이다."
디플레이션은 반대의 현상으로, 통화가치의 상승이 원인이 되어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에 비해 발생 빈도가 낮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재정난에 처한 정부가 반대의 경우와 달리 화폐를 찍어내어 그 가치를 평가절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화폐적 인플레이션과 비화폐적 인플레이션에는 서로 다른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팬데믹을 겪으며 확인했듯이, 두 유형의 인플레이션이 한꺼번에 발생하기도 한다. 물가 상승은 금전적 요인과 비금전적 요인에 의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에 일어나는 현상(그리고 우리의 금융 생활에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것이 두 개념의 차이를 구별하는 비결이다.
요컨대, 주택에 개량할 부분이 있었다 해도 거의 고치지 않았고, 지역 주택 시장에 불이 붙지 않는 한 주택 매매가가 100만 달러에 육박한들 집의 가치가 마법처럼 높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실, 주택의 가치는 점진적이면서 완전히 인위적인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왜곡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불평등
낮은 인플레이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케인스의 사상은 모든 것을 거꾸로 돌려버린다. 어떻게 우리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의 가치가 낮아지는데 우리 또는 누군가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많은 경제학자가 인플레이션을 '스텔스 세금 Steach tar' 이라고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정부가 통화를 평가절하하여 '국민의 재산 일부를 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몰수할 수 있다'라고 케인스는 인정했다.
한 간호사가 50,000달러의 소득을 벌어들인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연간 물가상승률이 2%(연방준비제도가 '안정성'으로 정한 수준)라면, 생계비가 상승해 간호사의 연봉이 사실상 1,000달러나 감액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슬며시 부과된 세금은 고정된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 예금자들,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 형벌처럼 가해진다. 세금은 그들의 소득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특히 그들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밀어 올린다.
스토니브룩 대학의 교수이자 사회과학자인 토드 피턴스키(Todd Pittinsky)는 “물가는 대개 사치품보다는 기본 필수품과 관련해서 더 상승하는데, 이는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 불평등(inflation incquality)'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라고 지적했다. 피틴스키의 주장은 여러 연구 결과로 입증되었는데, 지니계수' 같은 지표로 측정되었듯이, 인플레이션은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킨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는 한편, 전문지식을 갖춘 개인들과 기업들, 특히 통화 가치가 변동되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금융기업들이 뜻밖의 이익을 얻는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저명한 경제학자로 2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낸 마크 스쿠젠(Mark Skousen)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사상을 들어 가장 많은 혜택을 얻는 사람들이 대개 연방준비제도가 창출한 돈을 가장 먼저 받는다고 지적한다. 누가 이 범주에 속할까? 스쿠젠에 따르면, '대형은행, 상업적 이해관계자들, 주식 투자자들, 월스트리트'가 그 수혜자에 포함된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정부의 세입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임금이 인상되어 사람들이 높은 과세 등급으로 떠밀리기에 엉클 샘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게 된다. 미국은 2021년 연간 연방 세수 증가율이 1970년대 후반 이래 가장 높았다. 쇼핑가에 있는 사람들은 인상된 물가에 적응하려 무던히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인플레이션 덕분에 엄청난 세수를 거둬들인다.
인플레이션의 왜곡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을 붕괴시켜 2008년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화폐 착각이 불러온 또 다른 결과다.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닷컴 붕괴(dot-com bust)'로 알려진 것처럼 기술주가 폭락했고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이에 연방준비제도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연방기금금리를 1%까지 내렸다.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에 본원통화는 인플레이션을 겪은 1970년대의 수준과 맞먹을 정도로 증가했다. 그에 따라 달러 가치가 하락했고 금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잊지 말아야 한다. 화폐가 평가 절하될 때 돈이 제일 먼저 흘러들어 가는 곳이 주택 등의 경질 자산이다. 그래서 1970년대 인플레이션 시기에 담보 대출금이 부풀려진 반면에 주택 가격은 상승했기에 주택 소유자들이 최대 승자가 되었다.
연방준비제도의 저렴한 돈으로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거지 제공하도록 권장되었던 2000년대 초반 주택은 더욱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통했다. 그 때문에 대출 기준이 느슨해졌으며 위험성이 높아진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에게 보다 많은 대출이 제공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200%나 성장했다.
구매자와 판매자는 인플레이션의 집단적 본능에 사로잡혔다. 주택 구매자들은 주택 담보 대출에 필요했던 20%의 다운페이먼트(down payment)를 더는 요구받지 않았다. '명시된 소득 대출'도 유행했다. 이 대출은 '서류가 필요 없는 대출' 또는 '거짓말쟁이 대출'로 불렸는데, 채무자들이 소득을 속일 수 있고 제출하는 서류도 거의 심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행동으로 옮기려 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사는 한 노숙자는 집 다섯 채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투기꾼들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달러의 약세로 인해 가격 정보가 무너진 탓에 사람들은 주택 가격과 수요가 오르기만 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가격이 오르니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낮아 보였다. 주택 소유자들이 대출금을 연체한다고 해도 집을 매입했을 때보다 더 비싸게 팔아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었다. 노숙자 투자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 한들 그게 대수였을까? 집은 대출금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아직 아무도 우려하지 않는 위험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사망하기 바로 직전 인터뷰에서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폴 볼커(Paul Volcker)는 2%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한 통화 정책의 위험을 경고했다.
"일단 2%를 목표로 시작하면 사람들이 '자, 어쩌면 3%까지 가게해서 경제에 좀 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글쎄, 그게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4%까지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플레이션은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를 키운다."라고 말했다.
볼커의 예측은 2021년 말 적중했다. 인플레이션은 6%를 넘어갔다. 미국은 바이마르 독일도 아니고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와 사정이 같지도 않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달러의 구매력이 38%나 침식된 것은 물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주택 거품이 세계 금융 위기로 붕괴했다. 게다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침체가 이어졌으며 수십 년간 보지 못했던 폭력적인 사회 불안이 야기되었다.
최선의 방법은 달러가 금에 고정된 안정된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수십 개국이 자국 통화를 달러나 유로에 연계시켰듯이, 마찬가지로 금본위제도 달러를 금에 연결한 통화 체제다. 미국은 거의 2세기에 걸쳐 건전 화폐를 기반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화폐는 무엇보다도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줄자의 눈금을 변경할 수 없듯이 우리는 더 이상 달러의 가치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위적인 조작을 하고 있다(처참한 결과가 뒤따른다).
지난 50년간 연방준비제도의 인플레이션 정책 및 변동하는 법정 달러로 인해 성장이 둔화하였으며 경제 위기가 자주 발생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브레턴우즈 체제 및 고전적 금 본위제 시기와 비교해서 1970년대 초 이래 그 빈도가 2배가 되었다. 해당 연구는 2008년 금융 위기 이전에 진행되었다.
금 본위제 아래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다. 금본위제는 간단히 말해 통화의 가치가 고정되고 통화가 신뢰할 만한 가치의 단위로 충분히 기능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통화가 안정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면 투자가 활발해지고 경제가 호황을 누린다. 금본위제가 시행되었던 1800년 후반에 미국과 영국,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 결국에 일본까지 자국 통화를 금에 연결한 뒤 과거 수 세기 동안 창출된 부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했다. 미국은 달러가 금에 연동되었던 192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리고 1960년대 내내 '완전 고용(5% 미만의 실업률)'이라고 할 만한 고용률을 기록했다.
일반 통념과 달리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많은 양의 금을 공급할 필요는 없다. 이 체제는 12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 그런 다음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지 지켜봐야 한다!
지금 미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상을 억압하는 전례 없는 현상 속에서 '취소 문화'의 출현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편향성은 워싱턴 관료들 사이에서 전혀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이 과거의 번영을 재현하기 위해 금 기반의 통화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고가 철저히 가로막혔다. 미국은 물가 상승 및 계속 축소되는 달러를 통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 논의를 재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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