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정신의 세 단계 변화,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처럼

by 거꾸로 아빠 2020. 3. 31.
반응형

 

공부를 잘하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두뇌가 명민할 필요도 없다. 진득함, 성실함으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눈앞에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왔을 때 '나 이거 아는 건데?!', '나 이거 들어본 거야, 이거 잘 알아!'라고 생각해버리면 이내 자만심이 들고, 책이든 강의든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얄팍한 자만심이 더욱 깊이 있는 탐구를 방해하고 내공을 탄탄하게 다지는 길을 차단한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서 발전하지 않는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약하면, 정신은 '낙타 → 사자 → 어린아이'의 순으로 질적 변화를 겪게 된다. 낙타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이름의 거대한 용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며, 그 용은 천 년이상 인류가 믿어온 세계의 가치를 담고 있다. 낙타는 기존 세계의 가치, 그에 대한 가르침, 그 무거운 짐을 묵묵히, 가급적 많이 질 수 있는 성실한 학생이다.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낙타는 사막에 나가 자신이 믿어온 세계의 가치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창조를 모색하고자 자유를 필요로 한다. 이 순간 그는 사자가 되고, 자유를 쟁취한다. 하지만, 자유만으로 새로운 창조를 할 수는 없다. 자유를 찾은 정신은 기존 질서와 가치에 대한 망각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꾀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를 하는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돌아간다. 어린아이의 정신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거나,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 혁신을 이룬 사람이다. 그렇게 독자적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단번에 어린아이의 단계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 단계에 도달하려면, 사자의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사자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자가 되려면 성실하고 제대로 된 정신적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가 선택한 분야에 대한 제대로 된 학습과 위 세대들이 일궈놓은 담론을 '무릎을 꿇고' 겸손한 자세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가급적 기존 담론을 성실하게 습득해야만 비판과 극복도 제대로 할 수 있으며,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가치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기존 연구를 수용하는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 '낙타'의 단계를 건너뛰고 '사자'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린아이'가 되고자 하지만, 결코 제대로 된 낙타도 될 수 없다. 마치 자신들은 낙타의 단계를 극복한 듯 사자 코스프레를 하겠지만, 그런 태도로는 기본적으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무언가에 정통하지 못하면 그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어렵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니체가 말한 정신의 세 가지 단계와 비슷하다. 사자의 자유정신을 기반으로 어린아이의 새로운 창조력을 담아내고자 한다면, 일단 낙타가 되어야 한다. 선행 연구에 대한 존중, 위 세대의 대한 겸손, 성실한 배움의 자세와 이전의 지식을 몸과 머리로 견디어낼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실천하려면 일단 책상 앞에서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니, 어찌 공부가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단 낙타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세월이 빠르다지만 낙타를 거치지 않고 사자가 되려고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또 이런 사람들에게 낙타가 되지 않아도 사자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며 한 몫 챙기는 사람들도 넘쳐 흐른다.

결국 어린아이가 되는 사람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본질을 꿰뚫어 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싶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