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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스토리의 힘

by 거꾸로 아빠 2020.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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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카너먼은 '인지편향'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인지편향이란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비논리적인 추론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빠른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뇌에 새겨진 작은 지름길 같은 것이다. 인지편향은 대개는 도움이 되지만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

 

대표적인 예가 손실회피다. 1달러 이득에서 느끼는 기쁨의 크기는 1달러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의 크기와 같아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1달러를 잃었을 때의 쓰라린 마음이 같은 금액을 벌었을 때의 쾌락보다 훨씬 크다. 반면에 큰 이득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확체감 법칙에 따라 급속도로 줄어든다. 이렇듯 진화는 우리의 정신에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더 뚜렷하게 새겨놓았다. 손실이 크면 목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듀크 대학교의 댄 애리얼리가 카너먼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 인지편향 강의를 시작했는데,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꽤 됐다. "그런 사람들이 많기는 하죠. 그래도 저는 아닙니다." 인지편향이 인지편향을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애리얼리는 강의 방식을 살짝 바꿨다. 그는 인지편향을 설명하기 전에 모든 학생에서 착시 현상부터 보여주었다. 길이가 달라 보이는 두 선이 있지만 자를 대보면 같은 길이의 선이라는, 우리도 잘 아는 착시 현상이다. 애리얼리는 학생들에게 본인의 뇌를 완전히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단순히 설명만 하지 않고 직접 '체득'하게 했다. 뇌가 얼마든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후에야 학생들은 자신에게도 편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우리는 세상사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설계돼 있다. '세상일에는 의미가 있어',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어'와 같은 의미 부여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뇌는 뜬금없는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인가?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세상사에 대한 스토리, 그것이 우리 인간의 정신에 깃드는 의미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운명을 믿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삶의 의미, 즉 스토리는 우리가 고난을 이겨내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스토리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배우자와 어떻게 만났는지를 물어보면 무슨 말을 할까? 이것이 스토리다. 살다 보면 직장에서든 개인적인 일에서든 우리에게는 무수히 많은 일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토리를 만들어 그 일을 설명한다.

 

 

세상사에 달관한 사람들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화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저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흐르는 스토리라는 물살은 우리가 아주 중요한 순간에 부딪칠 때마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좌우한다.

 

어떤 사람들이 일에서 의미와 충족감을 얻는가? 자기 일을 '밥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병원 청소부는 일에서 깊은 충족감을 전혀 얻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환자의 병세 호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스토리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병원을 쓸고 닦는 일에서도 의미를 얻는다.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우화가 있다. 힌두교와 불교에는 경문이 있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설교를 하거나 불법을 설파하고 다닌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토리다. 종교의 스토리는 이렇게 행동하라고, 그러면 이 삶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종교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대중문화도 우리의 허전한 틈을 메운다. UCLA 영화학과 교수인 하워드 서버는 영화를 '세속의 사회를 위한 신성한 드라마'라고 묘사한다. 우리는 종교 우화를 따라하듯 영화 속 영웅들을 따라한다. 우리가 자신을 영화 속 영웅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 장애를 딛고 목표를 이룰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고 한다.

 

행복감은 또 어떠한가. 사람들이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행복한 순간이 와도 그 순간이 자신의 스토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과 스토리의 아귀가 딱 맞아야 스토리를 받아들인다.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우울한 비극인 자살도 마찬가지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자살을 하는 이유가 대개 '상황이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우슈비츠의 빅터 프랭클을 살게 만든 것은 스토리였다. 이렇듯 스토리는 우리를 버티고 이겨내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중에서


내 인생 스토리가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다. 스토리가 없는 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반면 내 인생의 스토리를 내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느낄 때 비로소 삶이 재미있어지고 행복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인지편향이라는 단어는 정치권에서 많이 등장하곤 한다.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듣고 싶을 것만을 듣게 되는 현상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현상을 더욱 더 부채질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같이 각종 SNS상에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돌아다니는 시대에 더욱 인지편향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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